오늘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한가지 율법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유월절과 안식일등 3차7개 절기를 지키고 있다보니 구약의 모세 율법을 지키는거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은 모세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패스티브 닷컴의 글을 통해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다는 것을 알아봅시다.
율법 폐지론과 변혁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깊어질수록 행위적 문제에 있어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이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양을,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 준수야 하면 그만 아닌가 하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부분의 기성교단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됐다는 ‘율법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은 폐지된 것이 아닌 ‘변혁됐다’는 ‘율법 변혁론’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폐지된 하나님의 율법을 굳이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인지, 또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변혁됐다고 하니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믿음의 영위에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인 율법의 ‘폐지론’과 ‘변혁론’. 그 중대한 문제를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율법은 폐지됐다
1. 근거
기성교단에서 주장하는 율법의 ‘폐지론’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서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4)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도 편지를 보내 율법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로마서 7:5~6)
2. 교단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율법 폐지론을 주장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중 몇몇 교회는 율법 폐지론을 부인하기도 한다.
3. 결론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됐다고 주장하는 데 사용하는 사도 바울의 서신 중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온전히 믿지 못하는 유대인을 책망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이다. 모세의 율법을 준수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인 후에도 그들의 관념 속에 새겨진 모세 율법을 버리지 못했다. 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 어디에도 ‘율법이 폐지됐다’는 기록은 없다.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반어법으로 기록한 이 말씀을 두고 율법 폐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로마서 7:6)
이 말씀도 율법의 폐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문이라는 모세의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새로운 복음인 그리스도를 섬겨야 할 것에 대해 강조하는 말씀이다. 모든 초점을 율법의 폐지에 두고 있으니 이런 말씀조차도 폐지론을 뒷받침한다고 믿는 것이다.
특히 율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인 안식일이나 절기 등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폐지론을 주장하는 개신교회들은 구약의 율법인 십계명은 지킨다. 율법의 폐지론을 완벽히 주장하려면 십계명도 지키지 말아야 한다. 십계명에서 제일 첫 번째 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굳이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율법의 폐지론을 주장하려면 일요일 예배도 율법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으며 개신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예배들도 의미가 없게 된다. 열 보를 양보해 일요일이나 다른 예배들은 율법이 아니라고 치자. 그러면 십일조는 더더욱 행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기성 개신교회에서는 십일조는 반드시 행하라고 가르치면서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라고 지킬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주장이라는 결론이다.
율법은 변혁됐다
1. 근거
율법이 변혁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율법이 필요하다. 해서 성경에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알려주고 있다. 옛 언약 즉 구약인 모세의 율법과 새 언약 즉 신약인 그리스도의 율법이 바로 그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0~21)
혼란스럽다. 도대체 사도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 율법이 한 가지라면 말이다. 하지만 두 가지 율법, 곧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구분된다면 이 말씀은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바로 모세의 율법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뒤에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기록했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유대교를 믿던 사람이다. 그러다 다메섹 노정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했다. 그 후 바울은 유대교에서 행했던 모세의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의 율법을 준수했다. 하지만 유대교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해야만 했기에 바울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그들처럼 행동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었지만 아직도 모세의 율법 아래 매여 있는 그들을 얻고자 노력한 것이다. 바울의 이 편지를 통해 율법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율법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만 주시지 않고 또 다른 율법인 그리스도의 율법을 주신 것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7~13)
‘첫 언약이 무흠하였다면’이라는 말은 ‘첫 언약인 모세의 율법이 흠이 없었다면’이라는 뜻이다. 시내산에서 주신 첫 언약 모세의 율법은 그 자체로는 흠이 없었지만 사람이 완전하게 지킬 수 없었기에 흠이 있다고 하셨다. 모세의 율법이 가진 이런 흠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인 그리스도의 율법을 주셨다. 그렇다고 모세의 율법을 폐지하신 것은 아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7~18)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모든 성경의 예언을 이루실 것에 대해 확고부동한 의지를 표명하셨다.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보아 모세의 율법 또한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과연 모세의 율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브리서 7:11~12)
하나님의 율법은 반드시 변역된다. 그래서 두 개의 율법이 필요하다.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두 개의 율법은 어떻게 변역됐을까? 세월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흘렀는데 율법만 거꾸로 그리스도의 율법에서 모세의 율법으로 변역됐을까? 아니다. 당연히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변역됐다. 그것도 ‘변혁’됐다. 고쳐서 바뀐 정도가 아니라 급격하게 바꿔져서 확 달라진 것이다. 해서 유대인들에게는 변혁된 그리스도의 율법이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 율법은 변혁됐고 우리는 모세의 율법에서 변혁된 그리스도의 율법 속에 살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2. 교단
성경의 예언대로 율법 변혁론을 가르치는 교단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대표적이며 몇몇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도 요즘은 율법 변혁론을 가르치기도 한다.
3. 결론
율법이 변혁됐다는 것은 변혁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무조건 율법이 폐지됐다며 성경에서 알려주는 안식일이나 3차 7개의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개신교회들의 병폐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니 그 속에서 교인들은 믿음을 지킬수록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알려주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에서 변혁된 ‘그리스도의 율법’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이사야 51:7~8)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구원을 주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3,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구원을 말하고 기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언 28:9)
기도조차 가증하다는 것은 구원을 바라며 아무리 가슴을 치며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의 기도는 듣지도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믿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믿음의 행위다.
내용출처 : 패스티브